Richard Dawkins - The God Delusion
Richard Dawkins
요약
정리:
오랜만에 신문 서평을 보고 읽게 된 아주 재미 있는 책이다. 영국의 동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은 인문학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며칠 전까지 14,000 여 권이 팔렸다고 한다 . 이미 영어권 국가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기도 하다.
아프카니스탄 인질들에게 쏟아진 비난과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을 보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가졌던 종교에 대한 의아함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차츰 무신론으로 흐르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확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 책이다. 도킨스 식의 글쓰기와 사고방식이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처럼 읽기 쉽게 잘 번역된 책은 아니다. 두 세 번 읽어 보고 이해한 대목도 여럿이다.
하지만 저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철두철미한 방어적인 논리는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반박하거나 댓글을
달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된다. 거의 600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2주일에 걸쳐 여기에 25페이지로
요약하여 올린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이 요약본이라도 읽어 보기를
바라면서…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서문: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John Lennon의 ‘Imagine’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라. 종교도 국가도 없는 세상을~
망상이란 모순되는 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것, 특히 정신 장애의 한 증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리차드 도킨스) 무신론자의 자긍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무신론은 마음의 건전한 독립성 즉, 건강한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가장 명석한 사람들, 지혜와 덕을 겸비한 사람들 중에 종교적 회의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된다면 세상은 경악할 것이다(19C 존 스튜어트 밀 ).
1.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
믿음을 믿다
나는 인격신을 상상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신은 우리의 불충분한 감각으로 세계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외심을 품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아인슈타인-
우리가 무지개의 신비를 풀었다고 해도 그 경이감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우리 시대의 과학자들이 종교적인 말을 하는 듯이 보여도 그들의 신념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대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들러난다 .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은 분명히 그렇다.
아인슈타인의 “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 흉기)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미신 )이다”라는 말이 흔히 인용되고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 내 안에 종교적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밝혀 낼 수 있는 세계의 구조에 대한 무한한 찬탄이다.” “나는 매우 종교적 불신자이다. 인격신이라는 개념은 내게 아주 이질적이며 심지어 소박하게 까지 보인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견해는 유신론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유신론은 초자연적인 지성을 믿는 것이다. 그 지성은 우주를 창조했고 여전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이신론( 理神論)은 초자연적인 지성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만드는 일에만 관여할 뿐 인간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범신론은 초자연적인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신이라는 단어를 우주나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을 가리키는 것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이신론은 약한 유신론이고 범신론은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에 선택을 했을까”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우주가 다른 식으로 시작될 수 있었을까 하는 범신론적인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의 배후에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의 숭고함이 간접적으로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전해진다고 느낄 때 ,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법칙을 말한다면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정서적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의 법칙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
性이나 번식에 관한 윤리가 논쟁거리가 될 때마다 몇몇 종교집단의 대표들이 주요 패널로 참석하고는 한다. 왜 우리 사회는 그들이 철학자나 의사나 변호사에 필적하는 전문지식을 지닌 것처럼 그런 논쟁 거리가 생길 때 마다 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의료용으로 대마초를 사용하는 환자는 연방법으로 기소대상이지만 ‘통일된 영혼’이라는 교파의 신자들은 환각제를 함유한 차를 마셔야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주장하기 때문에 환각제를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에 저촉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인종 차별 등의 편견을 주장하면 의례 그 편견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종교인에게 신앙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면 당신은 ‘종교의 자유’ 를 침해하는 꼴이 된다.
2005년 9월 덴마크의 신문에 마호메트를 묘사한 12컷 짜리 만화가 실렸다. 이슬람 세계에서 수 많은 성토대회가 열렸고 많은 이슬람 교도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흥분하였지만 이들은 아랍 언론에 실리는 판에 박힌 유대인 비방 만화들은 문제 삼지 않는 극명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극히 세속적인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걸맞지 않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 의아스럽다.
2. 神 假說
신은 착각
?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자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기독교에 물들지 않은 천진무구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기독교를 잘 알고 있었던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 기독교의 신은 잔인하고 복수심 많고 변덕스럽고 불공평한, 끔찍한 성격을 지닌 존재다”라고 하였을 정도이다.
이 책은 우주를 설계한 초자연적 지성이 있다는 가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견해를 지지한다 . 무엇인가를 설계할 정도로 복잡성을 지닌 창조적 지성은 오직 확장되는 점진적 진화 과정의 최종 산물로 출현하는 것이다.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나중에 출현할 수 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신은 착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유해한 착각이다.
다신교
다신교에서 일신교로의 진보? 그러면 일신교에서 신이 하나 더 삭제되면 무신론이 될 것이다(Ibn Warraq). 힌두교는 사실 다신교가 아니라 위장된 일신교이다 . 창조자인 브라흐마를 비롯하여 많은 신이 있지만 수 백 명의 신들은 모두 한 신의 다른 모습이거나 화신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과는 달리 신학은 1800년 동안 발전이 없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에 대해 말했다. “이해 불가능한 명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조롱이다. 이성이 작용할 수 있으려면 먼저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 교인들 누구도 명확한 삼위일체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칭 예수의 사제라는 협잡꾼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종교인들이 어떤 증거도 없을뿐더러 증거가 있을 수 없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아마 삼위일체설이라는 분야가 그렇듯이, 그저 조금 다를 뿐인 견해들에 대해서는 유독 심한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신학적 견해를 지지하는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신론을 붙들고 집적거리다가 오히려 다신교가 되어 버린 것은 로마 카톨릭이다. 우선 삼위일체에 거의 이름뿐인 마리아가 합류해 있다. 마리아는 거의 신에 버금가는 기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만신전은 5,120명의 성인들이 합류하면서 더 확대된다. 그리고 네 무리의 천사들도 잊어서는 안된다 .
일신교
우리 문화의 중심부에는 일신교라는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거대한 악이 자리하고 있다. 구약성서라는 야만적인 청동기 시대의 문헌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3가지의 반 인간적인 종교가 나왔다(고어 바이델 ).
유대교는 원래 사막부족의 배타성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유독 사나운 신을 섬기는 한 부족의 신앙이었다. 바울은 이 보다는 덜 무자비하며 덜 배타적인 유대교의 한 종파로서 기독교를 창시하였다. 몇 세기 뒤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유대교 본연의 비타협적인 일신교로 회귀하여 이슬람을 창시하고,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을 차용하여 코란을 만들고 군사 정복을 통해 신앙을 전파한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덧붙였다.
기독교의 사법제도는 15세기 동안 재판에 적용되어 왔다. 어디에서든 성직자들은 오만함과 나태함을, 평신도들은 무지와 굴종을 보여왔다. 그리고 모두 미신, 편협한 신앙, 종교 박해를 가져 왔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등대가 교회보다 유용하다.”고 했고 존 애덤스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상의 것은 종교가 없는 세계일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뒤 섞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부른 종교를 만들어 냈다.” 그는 제퍼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슬픔을 악용한 사례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이지요. 그 슬픔이 나은 재앙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Robert Sherman이라는 기자가 아버지 부시에게 무신론자인 미국인들도 동등한 시민권과 애국심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를 물었을 때에 부시는 답했다. “아니오. 나는 무신론자들을 시민으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곳은 신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하원은 435명, 상원은 100명이다. 이들이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면 통계적으로 그들의 상당수는 무신론자이어야 한다.
세속적인 인도를 꿈꾸었던 간디는 스스로 “나는 힌두교도이며, 이슬람교도이며 기독교이며 불교도다”라고 하였다. 이어 네루는 “ 많은 신앙과 종교를 지닌 인도 같은 국가에서는 세속주의를 토대로 하지 않으면 진정한 민족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不可知論者(Agnosticism), 불신자의 또 다른 이름?
“신이 존재하는지 나는 모른다 . 따라서 그의 존재를 믿는 것을 보류하고 없다고 가정하겠다. 검증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Thomas Henry Huxley)
이렇게 말한 헉슬리는 신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확률의 점진적인 변화는 무시했던 것 같다.
과학 너머에 종교가 있다?
우리가 과학자로서 신에 관한 논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창조적인 관리자가 있는 우주는 그것이 없는 우주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왜 그것이 과학적인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주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도대체 왜 무엇인가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 방정식들에 생명을 불어 넣고 그것들을 현실 우주로 구현시킨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들은 과학 너머에 있다. 그것은 철학자나 신학자의 영역이다.” 신학자들이 어떤 전문지식이 있기에 과학자들이 할 수 없는 심오한 우주론적 질문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인가? 왜 과학자들은 자신들 보다 신학자들이 그런 질문에 대답할 자격을 더 많이 갖춘 것도 아닌데, 비겁할 정도로 공손하게 신학자들에게 그런 질문을 떠 넘기는 것인가? 과학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만 관심이 있고 신학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자격이 있다는 말은 이제 지겹도록 진부하다. 왜로 시작되는 모든 문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추상은 무슨 색깔일까? 희망은 무슨 냄새일까? 설령 그 질문이 진정한 것이라 해도 과학이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종교가 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 신학이 하나의 학문이라고 가정할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종교가 인간의 지혜에 기여한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 게다가 어느 종교에게 그런 권리를 넘겨주겠다는 것인가?
나는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갖게 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기적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물론 기적은 과학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조건으로서 기적의 이행을 요구한다. 고인이 된 벨기에의 국왕은 낙태에 반대 했다는 이유로 성인 후보자에 올라 있다. 현재 그의 사후에 그에게 기도한 사람들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 났는지를 놓고 집중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다.
종교가 과학의 영토에 발을 들여 놓고 현실 세계에 관여하는 순간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기적이 없는 종교는 대다수의 유신론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임을 유념하자. 기적도 없고 기도자에게 응답도 하지 않는 신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기도하다’ 라는 동사에 대한 Ambrose Bierce의 재치 있는 정의가 있다.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 우주의 법칙을 무효화 하라고 요구하는 것 .”
기도의 힘
최근 종교인이며 저명한 물리학자인 러셀 스태너드가 템플턴 재단의 후원(240만 달러)으로 환자들을 위한 기도가 회복을 돕는다는 주장을 실험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1,802명의 심장병 환자를 세 무리로 나누고 첫 번째 집단은 기도를 받았으나 그 사실을 모르게 했고, 두 번째 집단은 기도를 안받았고 그 사실도 모르게 했고, 세 번째 집단은 기도를 받았으며 그 사실을 알게 했다. 2006년 4월 미국 심장학회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명쾌했다. 기도를 받은 환자들과 안 받은 환자들간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한편 자신이 기도를 받았다는 것을 안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심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이 연구가 실패로 끝나자 옥스포드 대학의 신학자인 리처드 스윈번은 신은 선한 이유로 한 기도에만 응답한다면서 그 연구에 반대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 아무튼 신의 존재 증거는 너무 많으며, 너무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
과학은 합리주의의 한 형태인 반면 종교는 가장 흔한 형태의 미신이다. 종교는 창조론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창조론은 종교 없이 존재 할 수 없다.
외계인과 신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만일 외계에 수 백 만년 앞선 문명이 있다면….
3.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신에 대한 막연한 정의를 내렸을 뿐이다 .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그 외에 아무런 증거도 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논리학자들은 전능과 전지가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의 전능을 발휘하여 우주 역사의 경로에 미리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 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가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즉, 신은 역사에 개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존재론적 논증과 연역적 논증들
철학자의 일이란 관찰보다는 생각을 통해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Aldous Huxley의 라는 책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수학적 증명을 발견한 노인이 나온다.
“ m / 0 = ¥ 이니 m = ¥ x 0 입니다. 즉, 무한한 힘이 무(0)에서 우주를 창조 했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은 신의 존재에 관한 터무니 없는 증명들은 http://www.godlessgeeks.com/ LINKS/GodProof.htm 에도 열거되어 있다.
예) 세계인구의 대다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그것은 악마가 의도한 것이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이런 인간들이 과연 인간의 지능을 가진 동물들인지 그
존재가 의심스럽다.
아름다움
논증
종교인들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라파엘의 벽화가 탄생한 공로를 종교에 돌리고는 한다. 하지만 교회가 예술의 주된 후원자가 된 것은 엄청난 부 때문이었다.
만일 세익스피어가 교회의 의뢰로 소설을 썼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햄릿이나 리어왕, 맥베드를 잃었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 논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신이나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 혹은 신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말을 걸기도 한다. 요크셔의 살인마 피터 섯클리프는 여자들을 죽이라는 예수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었다고 한다. 조지 W. 부시는 신으로부터 이라크를 침공하라는 말을 들렀다고 한다 ( 딱하게도 신은 거기에 대량살상 무기가 없다는 계시를 내려 주지는 않았다).
샘 해리스가 <신앙의 종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 우리에게는 합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갖가지 믿음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그들의 믿음이 대단히 흔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종교적’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것을 ‘미친’, ‘정신병적 ’, ‘망상’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다~~~. 수가 많으면 분명 제정신일 것이다. 그 러나 우리 사회에서 우주의 창조자가 당신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에 그가 모르스 부호처럼 빗방울로 창문을 두드려 당신에게 이야기 한다는 믿음은 정신병이라고 보는 것은 역사적인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종교인은 일반적으로 미치지 않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절대적으로 미친 짓이다 ”.
인간의 뇌는 모형 구축에 탁월하다. 잠을 잘 때에는 그것을 꿈이라고 한다. 깨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상상이라고 하지만 유독 생생할 때에는 환각이라고 한다 .
성서 논증
19세기 이래로 신학자들은 기독교 복음서들이 현실세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믿을 만한 문헌들이 아니라는 압도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나 쓰여진 것들이다. 심지어 예수의 삶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은 사도 바울의 서간들 보다 한참 뒤에 쓰여진 것들이다. 그 뒤로 모든 복음서들은 종교적 의도를 지닌 오류에 빠지기 쉬운 필경사들을 통해 복사되고 또 복사되었다.
종교적 의도가 스며든 사례로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당시의 전설과 헤롯왕이 유아들을 대량 학살한 당시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예수의 사후 복음서가 쓰일 당시에는 예수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예언에 따라 (미가서 5장 2절)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추종자들이 놀랐다고 언급하고 있다. 누가는 Caesar Augustus가 과세 목적으로 모든 유대인들을 자신의 동네로 돌아가라는 포고령을 내렸다고 말한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으므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다윗이 실존 인물이라면 예수보다 거의 1,000 년 전의 인물이다. 도대체 로마인들이 요셉에게 1,000 년 전에 조상이 살았던 땅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할 필요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인구조사가 있었지만 이것은 헤롯왕이 사망한 후인 서기 6년의 일이었다.
Robert Gillooly는 동쪽의 별, 처녀 출산, 왕들의 아기 숭배, 기적, 처형과 부활, 승천 등의 예수의 전설을 구성하는 내용들이 모두 지중해와 근동지역에 이미 존재했던 다른 종교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마테오는 요셉이 다윗의 28대 후손이라 하고 누가는 41대 후손이라고 한다. 아무튼 예수가 정말로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면 , 요셉의 족보는 그와 아무 상관도 없으므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구약성서의 예언을 예수에게 맞추기 위해 요셉의 족보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공식으로 인정된 4편의 복음서에 들지 않는 <도마서>에는 예수가 아이였을 때에 장난꾸러기 요정처럼 친구를 염소로 변하게 하고 진흙을 참새로 바꾸고 나무토막을 길어지게 하여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도왔다는 등의 마법 능력을 남용하였다는 일화들이 실려 있다.
<다빈치 코드>와 복음서들의 유일한 차이는 복음서들이 오래된 소설인 반면, <다빈치 코드>는 현대 소설이라는 것뿐이다.
독실한 과학자 논증
지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기독교를 불신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감춘다. 혹시 수입원을 잃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
1998 년 Nature지에 실린 글에는 미국국립 과학 아카데미에 선출된 저명한 미국 과학자들 중 인격신을 믿는 사람은 7%에 불과하다고 나와 있다. 이 보다 덜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약 40%가 인격신을 믿는다고 한다. 일반국민의 신앙심과 지적인 엘리트의 무신론이 비율상 정반대라는 것이다.
파스칼의 내기
수학자 파스칼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낮다고 해도 잘못 추정하였을 때에 닥칠 대가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을 믿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당신이 신을 믿지 않을 때, 당신이 틀리다면 영원한 천벌을 받을 것이고 옳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을 믿어라.”
그런데 왜 우리는 신을 기쁘게 하고 싶을 때에 해야 하는 일들 중의 하나가 그를 믿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걸고 그를 숭배하고 그에게 헌신하고 그를 위해 싸우고 죽는 일에 고귀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건다면 더 낫고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지는 않은가.
베이스 논증
“나는 증거가 전혀 없음을 인정하오. 그래서 그것을 신앙이라 하는 것입니다”.
4. 신이 없는 것이
확실한 이유
Boeing 747과 고물 야적장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은 고물 야적장을 휩쓰는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 낼 확률과 별 반 다를 바가 없다.
아직 과학자들이 생명체(세포)를
만들어 내는 환경조건이나 방법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번개를 이용한 단백질
합성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수 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수 천 번의 창조 실험과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면 지구의 자연환경은
그러한 시행착오를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1초에 수 백 만
번은 거듭할 수가 있다. 그것도 지난 46억년
동안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시도횟수에 따른 생명(세포
)의 창조 확률은 아마도 거의 1에 가까울 것이며
, 지금 이순간에도 새로운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은 이미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된 고등 생명체와 경쟁을 해야 하므로
살아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만이 살아갈 수 있는 폐쇄된
공간이 있다면 몰라도.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서 모든 인간들을 퇴출시키고
자연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다면 수 백 만년 후에는 진화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성제로서의 자연선택
지질학은 우리가 개인으로나 종으로나 생존기간이 짧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존 러스킨 (19C 영국 작가)의 의식을 일깨웠으며 1851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지질학자들은 나를 그냥 놔두면 아무 문제 없으련만. 그 끔찍한 지질 망치들! 내게는 성서의 각 절이 끝날 때마다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현대 우주론은 사실상 다윈과 Wallace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어느 누구와도 달리, 그들은 초자연적 행위자를 전적으로 배제한 채 우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어떤 것의 부분 중에서 단 하나라도 빠지면 모든 기능이 정지되는 경우를 말한다. 창조론자 Michael J. Behe가 1996년에 창안한 개념(단어)이다. 창조론자들은 모든 생명체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졌으므로 신이 창조했다는 주장을 한다 .
어떤 산의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오를 수가 없지만 다른 한 쪽은 정상까지 완만한 비탈을 이루고 있다. 창조는 밑에서 단 한번에 정상을 뛰어 오르는 것이지만 진화는 완만한 비탈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다윈이 그 사실을 발견할 때까지 너무 긴 세월을 기다렸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진다. 다윈(1809~1882)의 업적은 훨씬 대단해 보이는 뉴턴의 업적이 이루어진 해(1666) 보다 거의 3세기가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틈새 숭배
(God of Gaps)
창조론자들은 현재의 지식이나 이해에 나 있는 틈새를 열심히 찾아 다닌다. 틈새가 발견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신이 채워야 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신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틈새가 줄어들며, 결국 할 일이 전혀 없고 숨을 곳도 없어 짐으로써 신이 위태해 진다는 것이다 . 그러나 과학자들은 무지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무지를 앞으로 정복할 과제로 보고 기뻐한다.
신비주의자들은 수수께끼에 기뻐하며 그것이 신비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과학자들은 다른 이유로 수수께끼에 기뻐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할 일을 주기 때문이다 . 일반적으로 말해 종교가 미치는 진정으로 나쁜 효과 중 하나는 “몰이해에 만족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창조론자들은 화석에서 발견되는 틈새에 애착을 갖는다. 진화에서든 뭐든, 어떤 이야기의 모든 단계들이 하나하나 완벽한 증거자료를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는 지극히 비논리적이다. 누군가가 범죄자임을 인정하려면 그 모든 과정이 한 장면도 빠지지 말고 비디오로 기록되어있어야 한다는 논리와도 같다.
사체들 중 화석으로 남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진화론은 하나의 화석이 엉뚱한 지층에서 발견된다면 그 이론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어떤 창조론자는 이런 말을 했다 . “선캄브리아대의 토끼 화석이면 돼”. 그런 시대가 어긋난 화석이 진짜로 발견된 일은 없다. 비록 창조론자들이 석탄기 단층에서 인간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거나 인간의 발자국이 공룡의 발자국에 사이에 섞여 있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전설을 제시하곤 하지만 말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니케아 공회의 조정자, 고백록의 저자, AD 353-430)는 말했다. “더욱 위험이 큰 또 하나의 유혹이 있다. 바로 호기심이라는 병이다. 자연의 비밀들,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며 우리에게 아무 소용도 없고 어느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비밀들을 탐구하여 규명하라고 우리들을 충동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진화한 기관들은 뛰어나고 효율적이지만 종종 결함도 보인다. 쓸데 없이 목적지까지 멀리 우회함으로써 진화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되돌이 후두신경’이 한 예다. 요통, 탈장, 자궁 탈출증 , 굴염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질병 중 많은 것이 네 발로 걷도록 다듬어진 몸을 그대로 지닌 채 두발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난 것들이다.
포식자들은 먹이를 잡기 위해 아름답게 설계된 듯하며, 먹이감들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설계된 듯하다. 신은 도대체 누구 편일까?
인본 원리: 행성 편
이 인간 원리, 혹은 인본 원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만약 세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고 , 수많은 자연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인간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된 세계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보는 자연 법칙이란 인간이 나타날 수 있는 법칙을 가진 우주의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만약 우리에게 있어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태양과 같은 항성의 주위에는 Goldilocks zone이 있다.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는 그 영역에서 행성에는 물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은하에는 10억 ~300억 개의 행성들이 있고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생명의 기원 즉, DNA에 상응하는 무엇인가가 자발적으로 출현할 사건이 있다고 가정하자. 아주 낮은 확률로 계산하여도 생명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는 행성은 10 억 개는 족히 된다.
인본원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과연 물과 산소가 있어야만 생명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이 만들어진다. 지구상에는 혐기성 미생물도 있고 수온이 120도에 이르는 해저 화산 분출구에서 사는 미생물도 있다. 그리고 단백질만이 세포의 구성원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어느 행성에
인간에게는 유독물질인 바다 또는 대기의 흐름이 있다면 거기에서도 어떤 형태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행성들이 있고 백
수십 억년 간 수많은 행성들이 태어나고 사라져갔다. 우주에 있는
행성의 수만 따지지 말고 그 긴 세월 동안의 변화도 고려한다면 지구
이외에서의 생명의 역사에 대한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인본 원리: 우주 편
우주의 모든 원소들은 궁극적으로 수소의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핵융합은 별의 내부라는 엄청난 고온의 조건에서 만들어 지는 과정이다. 태양과 같이 상대적으로 작은 별은 헬륨과 같이 가벼운 원소들만 만들 수 있다. 더 무거운 원소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고온을 얻으려면 더 크고 더 뜨거운 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별은 폭발하여 초신성이 되면서 (92 종류의) 자연계 원소들을 포함한 먼지 구름으로 흩뿌린다. 이 먼지 구름이 응축되면서 행성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다양한 원소들이 없었다면 화학 작용도 생명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물리법칙과 상수들이 아주 조금만 달랐어도 우주는 생명이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발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Martin Rees의 <여섯 개의 수>에서 우주 전역에 적용되는 근본 상수 여섯 가지를 나열한다. 이중 하나가 강력의 크기이다. 강력은 원자핵의 구성 요소를 묶는 힘이다. 강력은 수소가 결합하여 헬륨을 형성할 때에 에너지로 전환되는 질량의 비로 측정하며 이 값은 0.007이다 . 만일 강력의 값이 0.006이면 우주에는 수소 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 어떤 화학작용도 일어날 수 없다 . 반대로 강력이 0.008이라면 수소는 모두 융합되어 버린다 . 수소 없는 화학작용은 물이 없다는 의미가 되므로 생명을 발생시킬 수 없게 된다.
유신론자들은 신이 우주를 만들 때에 우주의 근본 상수들을 각각 생명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골디락스 영역에 맞추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 역시 신의 존재를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여섯 개의 골디락스 값들을 계산할 수 있는 신은 그 미세한 숫자들의 조합만큼이나 있을 법하지 않다.
케임브리지의 막간극
신이 정말로 인간과 대화를 한다면 그 사실 자체는 결코 과학의 바깥에 놓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세계에 체류하는 신이 우리 세계로 들어 오며 인간의 뇌는 그 메시지를 수신한다. 신이 수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통신한다면 그 엄청난 대역폭을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신은 우리가 아는 어떤 두뇌나 컴퓨터보다도 정교하며 계획적으로 구축된 무엇인가 여야 한다.
5. 종교의
뿌리
종교, 다윈주의를 비켜가다.
왜 모든 인류 문화가 종교를 지니고 있는 가에 대해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론을 갖고 있다. 종교는 위안과 평안을 제공한다 . 집단에 연대감을 부여한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에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다윈주의 관점에서 보면, 다윈주의가 본래 경제성을 따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종교는 너무 낭비적이며 사치스럽다 .
중세의 성당은 수세기에 걸쳐 완공되었지만 거주 등 다른 유용한 목적으로 사용된 일이 없다. 독실한 사람들은 신을 위해 죽었고 신을 위해 살인을 했다. 그렇다면 종교의 혜택은 과연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