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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 구토 中

Quote of The Day | 2008/09/01 00:29 | Jay
나는 주위를 불안하게 돌아보았다.

현재뿐이였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재 속에 처박힌 가볍고 튼튼한 가구들,

이를테면 테이블, 침대, 거울 달린 옷장이나 나 자신이였다.

현재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현전하는 그대로.

그 현재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 속에서도 내 머리속에도 없었다.

오래 전에 내 과거가 나한테서 달아나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내 능력 밖으로 물러선 것뿐이라고 믿었다.

나에게 과거는 은퇴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 역시 존재 양식 이였다.

휴가 중인, 활동을 그만둔 존재.

사건들마다 결말을 고할 때, 그만큼 무(無)를 생각하는 게 어려웠다.

이제야 알았다.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일 뿐이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르트르 : 구토 中-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분류없음 | 2008/09/01 00:09 | Jay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이후 Bold 체는,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부분)


20 세기 지식인 역사에서 사르트르 만큼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르트르의 지적활동이 연구실의 벽속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 구석구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외형적인 그의 다양한 변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다는 기본적인 삶의 목표는 일관되게 지켜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광 범위한 사르트르의 지적편력을 짧은 글로 요약하는 것은 실존주의라는 말에 대한 정의 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의 핵심적인 몇가지를 짚어보자면 우선 실존주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이에 따르는 필연적인 문제 즉 신의 존재 여부,그리고 20세기 현실역사에서의 이데올로기 문제 등등이 먼저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어 구체적인 20세기 역사에서 그는 어떤 행동방식을 취했는가를 살펴 보면 그에 대한 대강의 윤곽이 제한적이나마 드러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내팽개쳐진 존재’


다 양한 의미영역을 포괄하는 실존주의라는 용어는 실제 역사에서 무척이나 상이한 양상으로 시도되었으므로 한마디로 이것이 실존주의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르트르의 경우 한때 배운 바 있는 M.하이덱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하이덱거의 실존주의에서 그의 철학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덱거가 볼 때 인간의 존재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내팽개쳐진 존재’ das geworfene Dasein 라는 말로 인간존재를 표현하였다. 인간은 이 우주공간에 그 어떤 기준이나 근거도 없이 우연하게 내팽개쳐진 존재라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세계관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껍데기도 씌워지지 않은 벌거벗은 상태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가장 헐벗은 상태로서의 인간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역사나 이데올로기나 어떤 체계에 의해 굴레가 덧씌워지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모습의 인간은 아무런 존재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존립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 우주공간에 아무런 이유없이 내팽개쳐졌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아무런 합목적적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2.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인 간존재의 무근거성은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궁리를 거듭해보아도 신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의 존재여부는 그의 철학을 가늠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비교적 자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의 무신론적 입장은 20세기 다른 지식인들과 대동소이한 이유에서 나온 결론이다. 가령 B.브레히트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 절대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암시를 풍긴다. 어느 강연에서 청중이 브레히트에게 물었다. 신이 존재하는 것이냐고. 이에 대해 브레히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시오. 내 대답여하에 따라 당신의 생각이 달라지는가 아닌가.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질문은 불필요한 것이요. 그리고 내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의 생각이 달라진다면 이미 당신은 신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요.”

 

무신론적 입장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자신의 간호사와 결혼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결혼은 정신적인 결합일 뿐이었다. 그의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것을 호킹은 견딜 수 없었다. 왜 냐하면 자신의 물리학적 세계관으로 볼 때 신이 존재한다는 상상은 도저이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성서는 지구를 중심으로 쓰여졌다. 그것도 물리학적인 지식이 원시인과 다를 바 없을 때 쓰여진 것이다. 현대인의 상식으로 본다면 지구는 태양계에 비하면 먼지 만한 크기도 안된다. 그리고 태양계는 그 보다 큰 단위인 은하계에 비하면 먼지도 안된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은하계가 50억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우주에서 지구의 인간 하나하나를 주재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상상은 할 수 없다는 것이 호킹 박사의 생각이었고 아무리 정신적이고 형식적인 결혼이라지만 그의 양심은 결혼생활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먼저 신의 개념을 설명한다면 답하겠다.”라고.


가 령 흔히 쓰는 말 중에 ‘천지’라는 말이 있는데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이 말은 전혀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다. ‘상하’,‘좌우’,남여‘,’주야‘같은 말들처럼 당연한 짝으로 사용되지만 이것은 마치 바닷물과 접싯물을 한쌍으로 결합시킨 것 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표현이다. 그만큼 지구는 우주에서 미약하고 초라한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사르트르는 신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는 아무 근거가 없는 우연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존재와 본질 문제가 제기된다. 사르트르는 종이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즉 종이칼은 그 용도를 미리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존재에 앞서 본질이 주어진다. 제작된 물건들은 모두 본질이 존재에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에 쓰려고 만든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본질은 백지 상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바로 ’인간의 존재(실존)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 공존 혹은 더불어 삶(Mitsein)  


사르트르가 초기에 천착한 문제는 정당화되지 않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철학서인 <존재와 무>는 바로 그와 같은 인간의 실존에서 필연적으로 타인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상황과 그에 대한 인간의식에 관한 것이었다. 더불어 사는 대상이 사물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인간이 사물을 대상화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멋대로 사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도 사물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을 즉자화시키는 것이다. 화분 속의 꽃을 아름답다거나 거추장스럽다거나 불필요하다거나 심지어 추하다고 까지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의미부여를 해도 꽃은 반응이 없다. 그러나 대상이 인간인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내가 타인을 사물처럼 즉자화 시키려 해도 상대방 역시 대자의식을 갖고 나를 즉자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와 무>는 이와 같은 타인과의 문제에서 생존하는 두가지 가능성을 분석한다. 하나는 나의 대자성을 밀고나가는 것이다. 상대를 사물처럼 대상화 시키고 즉자화 시키는 것이다.

다 른 하나는 나 자신을 사물처럼 즉자화 시키는 것이다. 이 두가지 가능성은 모두 실패로 끝난다. 의식을 지닌 인간을 즉자화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론적 여건은 타인의 지옥에서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드러나고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인간 스스로 창조할 수 밖에 없다. <존재와 무>는 앞서 발표된 소설 <구토>에 대한 해설서의 성격으로 쓴 것이다.


소 설 <구토>에서는 관계와 목적성을 상실한 존재에 대한 감정이 표현되고 무질서한 존재들에 조화를 배열하려는 의도가 나타난다. 사물들과 사물화된 인간존재의 無償性에 구토를 느낀 주인공은 예술창조를 통해서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은 없이 단지 가능성으로만 끝난다. 이상 <구토>에서 <존재와 무>에 이르기까지 사르트르가 매달린 것이 인간의 실존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규명하려는 노력이었다면 전쟁을 체험한 이후에 사르트르는 집단속에서의 존재문제로 관심을 돌린다. 더불어 산다는 공존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공산당과 유착하는 계기를 가져다 준다. 당시 사르트르가 볼 때는 부르주와지가 인간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르트르는 공산당과 속성이 달랐다. 그의 유물론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인식하는 실존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도 했고 사르트르 자신이 후일 카뮈의 공격을 받았듯이 부르주아지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4. 자유의 문제


인 간의 실존은 사물의 존재와 다르다. 사물은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처럼 미리 설정된 인간의 개념은 부정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그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지울 대상이 없다. 인간 스스로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수 밖에 없다. 스스로 본질을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자유이다. 우연히 내팽개쳐진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과정,즉 본질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유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역사의 변혁기 마다 노선을 바꾸고 개인이건 집단이건 끊임없이 적으로 돌리고 투쟁했지만 인간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과 맞서 싸워왔다는 입장은 일관된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부르주아지를 자유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여기고 공산당과 유대하여 싸웠지만 헝가리 자유화운동 이후에는 공산당과도 결별했다. 좌우 어느 진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력과 싸웠다는 일관성을 그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가 주관한 잡지 <현대>에서도 자유의 문제에 대한 그의 끝없는 열정은 이어진다.

 

사 르트르는 철학적인 입장에서 저술활동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학에도 상당한 정열을 기울였다. 그가 쓴 소설작품들은 예외없이 그의 세계관을 예술적인 기법으로 허구화한 것들이어서 그의 철학적 명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문학작업은 단순한 철학의 형상화가 아니라 문학 자체의 성과도 뛰어난 것이어서 비록 그 자신이 거절하긴 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사 르트르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물론 인간의 실존에 관한 것이다. 나아가 그 실존에서 인간의 자기실현을 위한 자유에 관한 것이다. 그가 사용한 ‘앙가지망의 문학’이란 바로 존재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문학론>에서 사르트르는 문학의 목표를 자유실현이라고 말하는데 그 자유실현을 위해 하는 것이 바로 앙가지망(참여)문학이고  앙가지망이란 ‘자유라는 목적의 도시를 보여주는 순수성’과 직결된다.


<침묵의 공화국>에서는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처절한 고문과정에서 동지들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자유,전적인 고통속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걸머지는 것,바로 이것이 자유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단편 <벽>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설정되고 있다. 지하 감방에 갇힌 주인공은 나찌 장교에게 불려나가 동지들의 아지트에 대해 발설할 것을 강요받는다. 주인공은 견디다 못해 엉뚱한 곳을 지목한다. 물론 인간존재의 우연성으로 인해 마침 그 시각에 주인공이 지목한 장소로 옮겨간 동지들은 체포되지만 그 고통의 극단상황에서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자유는 있고 자유는 선택이며 선택은 전인류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는 것‘이라고. 바로 여기서 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지가 밝혀진다. ’전인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걸머진다‘는 것이 실존주의이기 때문이다.


스 스로 부르조아지 출신이면서도 기존질서에 끝까지 항거하며 좌우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일체의 제도적인 권위를 인정치 않으며 인간의 자유를 일관되게 지키려고 한 지식인은 그것도 서재속에 갇힌 게 아니라 삶의 현장을 거침없이 누비며 활동한 지식인은 아마 사르트르가 유일할 것이다.